요양시설에 거주 중인 치매 어머님을 모시는 59 세의 A 씨가 직면한 고단한 현실은 많은 중년층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병원비와 요양 비용으로 급하게 1,500 만 원이 필요할 때, 어머니 계좌에 있던 2 억 5,000 만 원의 예금을 인출하려 시도했지만 은행 창구에서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금융기관은 향후 상속 분쟁 등 법적 문제를 우려해 가족 구성원의 인출을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 직원의 조언대로 신탁을 미리 설정하지 못한 채 A 씨는 법원에 성년후견 개시를 신청해야 했으며, 이를 위해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때까지 자금을 활용할 수 없었다. 이처럼 긴급한 자금 수요에 대응할 수 없는 구조는 치매 가족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준다.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74 세의 B 씨는 아직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으나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를 체감하며 치매 악화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다. 최근 치매 노인을 노린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자 재산 관리에 대한 걱정이 깊어졌는데, 자녀에게 맡기기엔 부담스럽고 스스로 관리하기도 불안한 상황이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치매 환자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172 조원을 넘어섰으며 2050 년에는 488 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노년층의 자산이 증가하자 관리 부실과 금융사기 위험도 함께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치매로 인한 판단력 저하로 사실상 사용이 막힌 막대한 자산을 어떻게 보호할지가 핵심 문제다.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기 전에 현재 보유한 자산을 언제 어떻게 활용하고 누구에게 권한을 위임할지 사전에 정해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치매 발병 이후 대응은 가능하지만 법적 절차를 밟으면 수개월의 시간이 걸려 긴급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기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이달부터 치매 안심재산 관리 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해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노인의 재산을 공적으로 관리하고 의료비와 생활비를 계획된 현금흐름에 따라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서비스의 핵심은 단순한 보관이 아닌 매월 필요한 비용을 자동 배분해 자산이 실질적으로 생활에 쓰이도록 설계하는 점이다. 예기치 못한 고액 인출이나 계약 변경은 심의 절차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사기나 경제적 학대를 사전에 차단한다. 가입 대상은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경도인지장애로 재산 관리가 어려운 노인까지 포괄하며, 치매 환자의 경우 후견인 선임이 필수적이다. 적절한 대리인이 없을 시에는 정부가 공공후견인을 연계해 지원한다. 재산 범위는 현금성 자산을 최대 10 억 원까지 수용하며, 중산층 보호를 위해 민간 신탁보다 저렴한 비용 구조를 가지고 있어 기초연금 수급자는 무료, 나머지는 연 0.5% 수준이다.
자산 규모가 10 억 원을 초과하거나 부동산까지 관리하고 싶다면 민간 금융상품인 치매신탁을 고려해야 한다. 은행과 보험사는 유언대용신탁, 치매 안심 신탁, 보험금청구권 신탁 등 다양한 상품을 통해 사망 후 재산 분배나 생활비 지급을 자동화한다. 유언대용신탁은 사망 이후 자동 분배되며 법적 분쟁을 줄일 수 있지만 초기 비용이 높고,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상속 재원 관리를 위해 다자녀 가구에 적합하다. 공공신탁은 자산 보호와 지출 통제를, 민간신탁은 자산 증식과 이전을 목표로 하므로 두 상품을 보완재로 활용하는 이원화 전략이 필요하다. 다만 이달부터 시작되는 공공신탁은 시범사업으로 대상과 액수에 제한이 있으며 2028 년부터 본사업으로 확대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