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쟁 추경'이라 불리며 사회적 논란을 빚었던 26조 2000여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 중 일부인 고유가 피해 지원금이 이제부터 국민들에게 직접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예산 편성을 두고 '빚 없는 추경'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국채를 새로 발행하지 않았으며, 정부 예상치보다 더 많이 걷힌 초과 세수를 활용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세금 부과도 없었고, 국가 채무도 증가하지 않았으니 '착한 추경'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여 지출을 늘릴 때 발생하는 경제학적 메커니즘을 따져보면, 이 명분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세금을 증액하는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에도 국채를 발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단기적으로는 경기 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민소득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물가 상승만 초래하는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조세 감면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시도가 장기적으로도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조세 감면으로 인해 재정 적자가 발생하면 국가 채무가 늘어나고, 이는 미래에 정부가 빚을 갚기 위해 세금을 다시 늘릴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만약 경제 주체들이 미래의 세금 부담을 예상한다면, 당장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하더라도 소비를 늘리지 않고 저축하거나 지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리카도 대등 정리, 즉 등가 정리가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부 지출 규모가 일정할 때 그 재원 조달 방식을 세금으로 하든 국채로 하든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동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이론이 현실 경제에 무조건적으로 적용되기에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우선 모든 경제 주체가 미래의 세금 부담까지 정확히 예측하며 현재의 소비를 결정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직접 갚아야 할 빚이 아니라면 미래 세대의 부담까지 고려하여 소비를 줄일 동기가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예산정책처는 관련 보고서에서 초과 세수를 활용한 추경은 국채 추가 발행과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유사한 효과를 낸다고 경고했습니다. 새로 찍어낸 돈이나 세금이든 정부가 쓰는 자금은 궁극적으로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차이는 없습니다.

정부가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리거나,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는 것입니다. 세금을 늘리는 것은 정치적 저항이 크므로 정부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국채 발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채를 발행해 지출을 늘리면 국가 전체의 총수요가 증가하여 경기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발생하지만, 이는 총공급을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공급이 고정된 상태에서 수요만 늘어나면 물가가 오르고, 이는 다시 수요를 가라앉히며 장기적으로는 임금을 포함한 생산요소의 가격을 상승시켜 총공급을 줄이는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국채를 통한 지출 확대는 단기적인 소득 증가와 물가 상승만 가져오며, 장기적으로는 물가만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조세 감면과 국채 발행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 고민해 볼 때, 세금 감면으로 가처분소득이 늘어나 소비 여력이 생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경기 부양 효과는 단기에 그치며 장기적으로는 완전고용 국민소득 수준으로 회귀합니다. 이는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로 몇 점 더 받는 것과 비슷하며, 평소 실력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국 세금도 국채도 새로 찍은 돈도 정부 지출은 모두 국민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돈을 더 찍어 화폐 공급량을 늘리면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상승하며, 이는 세금보다 더 많이 걷는 것과 동등한 결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착한 추경'이라는 표현은 경제학적 현실을 고려할 때 환상에 불과할 수 있으며, 국민이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